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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지로

Kojiro 宏二郎 2024-02-17 ~ 2024-03-16

갤러리 그라프는 217일부터 316일까지 코지로 개인전 《창백한 푸른 점 淡く青い点》을 개최한다. 객관과 주관, 사물과 인간이 분열되지 않고 일체가 된 모습을 물아일체라고 한다. 장자가 꿈을 꾸었는데 나비가 되어 꽃들 사이에 즐겁게 날아다니다 깨어나보니, 자신은 장자가 되어 있었다. 장자가 꿈에서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장자가 되는 꿈을 꾼 것인지 구분을 할 수 없었다. 코지로 작가의 작품 속 불쑥 등장하는 곤충과 촛불은 꿈을 통해 모든 경계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모습이다. 작가가 그려낸 자연은 작가에게 단순한 대상이 아닌, 자아 그 자체로 여겨진다. 코지로 작가는 학생 시절 접했던 사르트르, 카프카 등 서양 문학이나 철학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다 문득 불교사상을 만났다고 작가는 말한다. 인간도 옮겨가는 만물의 일부라고 하는 일본의 자연관, 인간과 자연의 구별을 분명하게 하지 않는 감각. 또 틈이나 여백 등 일본의 독자적인 미의식에 흥미의 방향이 바뀌면서 서양 사상에 사로잡혀 있던 사고방식이 변한 것이다.


일본의 미술 운동 중 모노파(もの派, 모노하)는 물(, 일본어로 모노もの), 즉 물체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채택하며, 그 안에서 미학적인 요소를 찾아 예술로서의 의미를 추구하는 운동이다. 이우환 화백의 평론은 일본 미술계에 등장했던 모노파 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함으로써 1960년대 후반부터 주목 받기 시작했다. 모노파 작품들은 물리적인 물체뿐만 아니라, 감각적인 경험, 감정, 아이디어 등을 모두 아우르며, 전체적인 존재의 개념을 탐구하고자 한다. 코지로 작가의 작품은 이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데, 작가의 시선이 닿은 것은 허공이 아닌, 그렇다고 물건도 아닌, 그 사이를 연결하는 시간 혹은 여백이다. 작가의 작품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연결하는 상징적인 중간 지점에 머물러 있다. 항상 존재하는 것들과 관람객, 작품과 관람객을 잇는 공간, 그리고 작가 자신 사이의 세계를 형성하는 작가의 작품은 그곳에 있는 생명을 세심하게 관조한다.


코지로 작가는 2001년 도쿄 예술대학 미술학부 회화과 유화 전공을 졸업했으며, 최근 부산 금정문화회관에서 열렸던 <시선 – 2023 해외문화예술교류전>을 비롯한 수많은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작품을 선보였다생生이라는 것은 일종의 파도와 같이 서서히 나타났다 사라지고, 거기에 자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실존은 반드시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인간의 본질은 결정 혹은 고정 되지 않았다. 생生을 항해하며 본질을 탐구하는 작가의 작품은 인간이 처음으로 온전히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던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과 같이 고요히, 거기에 있다.